방탄소년단·박진영… 코로나 시대 왜 다시 ‘디스코’인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오프닝. (사진 = 유튜브 캡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오프닝. (사진 = 유튜브 캡처)

“네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살아 있잖아. 살아 있으면 된 거지. 도시가 새벽에 잠 깨는 걸 느껴봐. 그리고 사람들이 부산스러워하는 것도. 우리는 살아 쉼 쉬고 있는 거야. 숨을 쉬고 있다고. 아 아 아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Whether you’re a brother or whether you’re a mother. You’re stayin’ alive stayin’ alive. Feel the city breakin and everybody shakin. And we’re stayin’ alive stayin’ alive.)”

존 트라볼타가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1977) 오프닝에서 영국 밴드 ‘비지스’의 ‘스테잉 얼라이브(stayin’ alive)’에 맞춰 길거리를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 장면은 아직까지 회자된다. 영화 속에서 오른 손을 공중으로 높이 치켜들고 반대쪽 엉덩이를 옆으로 쭉 뺀 트라볼타의 모습은 디스코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세계를 휩쓴 디스코 장르를 재해석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새로운 디스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는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의 ‘왓 어 맨 갓타 두(What A Man Gotta Do)?’, 헤일리 스타인펠드(Hailee Steinfeld)의 ‘아이 러브 유스(I Love You’s)’를 만든 뮤지션 데이비드 스튜어트(David Stewart), 제시카 아곰바르(Jessica Agombar)가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발랄하고 흥겨운 멜로디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다이너마이트’는 듣자마자 무척 신났다. 우리가 시도하고 싶었던, 살짝 무게가 덜하고 생각 없이 신나는 곡이라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안무도 방탄소년단이 그동안 보여준 격한 칼군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춤으로 구성했다. 디스코의 포인트 안무인 공중으로 손 찌르기는 물론 트라볼타처럼 머리를 쓸어올리는 동작도 있다.

방탄소년단에 앞서 국내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디스코 재열풍에 불을 지폈다.

어느 날 밤 MBC TV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시그널 음악인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의 ‘브라더 루이(Brother Louie’)에 영감을 받아 단 3시간 만에 완성한 ‘웬 위 디스코’다.

제대로 된 복고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유로디스코에 쓰였던 악기들을 사용하고, 80년대 음향 장비로 녹음을 했다. 박진영이 발굴한 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선미가 피처링했다.

특히 중독성 강한 디스코 리듬이 특징으로 박진영이 안무도 직접 창작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고 골반을 흔드는 안무부터 경쾌하고 우아한 디스코 스텝, 듀엣 파트너 선미와의 커플 댄스 등을 본인이 구상했다.

이미 박진영은 지난 2007년 원더걸스와 함께 국내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1980년대 팝스타 스테이시 큐의 ‘투 오브 하츠’를 샘플링한 원더걸스의 1집 타이틀곡 ‘텔 미(Tell me)’로 당시 가요계에 복고 열풍을 일으켰다.

◇디스코의 탄생

1950년대가 로큰롤, 1960년대가 포크와 사이키델릭 시대라면 1970년대는 누가 뭐래도 디스코의 시대다.

디스코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라이브 밴드 대신 레코드를 사용한 ‘디스코텍’이라는 댄스홀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크자키(DJ)가 대중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틀어주는 디스코텍은 새로웠다. 특히 밴드 자리를 덜어내니, 춤 공간이 넓었고 비용까지 저렴해 젊은 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디스코 첫 스타는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는 도나 서머다.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겸 음악PD인 조르지오 모로더와 함께 197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렸다.

1977년 ‘토요일 밤의 열기’가 흥행하면서 디스코 열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스테잉 얼라이브’를 비롯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How Deep Is Your Love)’ 등 OST는 대거 히트곡을 쏟아내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디스코 가수들이 쏟아졌다. 베토벤을 비롯한 클래식음악도 디스코로 리믹스됐다.

디스코의 열기는 바다 건너 한국에도 상륙했다. 1970년대 무교동에 카네기, 싼다 등 유명 디스코텍에는 청년들이 가득했다. 1980년대에는 ‘써니’로 유명한 팝 디스코 그룹 ‘보니엠’이 큰 인기를 누렸고,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와 턱앤패티의 ‘타임 애프터 타임’ 등이 롤러장에서 울려 퍼졌다.

이태원의 클럽 ‘문 나이트’는 1980년대 디스코의 또 다른 성지였다. 박진영을 비롯해 서태지와아이들의 멤버였던 이주노 양현석, 클론의 강원래와 구준엽 등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을 이끈 춤꾼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한용진, 신철 등 디스코 음악을 주로 들려주는 DJ도 인기였다. 조경수의 ‘YMCA’, 방미의 ‘날 보러 와요’ 등 디스코 번안곡도 인기를 누렸고, 이은하의 ‘밤차’ 같은 토종 디스코 음악도 등장했다.

2007년 원더걸스의 ‘텔미’와 함께 2008년 디스코 음악에 일렉트로니카를 입힌 엄정화의 ‘디스코(D.I.S.C.O)’도 인기를 누리면서 200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이 불기도 했다.

◇왜 다시 디스코인가 ?

1976년 6월 ‘뉴욕 매거진’에 실린 비평가 닉 콘의 13쪽짜리 르포가 그 바탕인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 이탈리아인 구역에 사는 열아홉살 토니(존 트라볼타)가 디스코 경연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단순한 댄스 영화가 아니다. 경제 불평등, 유색인종 차별 등 당시 소외당한 젊은이들의 좌절을 이야기했고 디스코는 희망이자 분출구가 됐다. 코로나19에게 함부로 삶을 침범 당한 지금도 대중음악 판에서, 듣기만 해도 신나는 디스코는 출구로 작용한다.

올해 상반기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호응을 얻은 두아 리파의 ‘돈트 스타트 나우(Don’t Start Now)’, 도자 캣의 ‘세이 소(Say So)’ 역시 디스코를 재해석했다.

한류 그룹 ‘엑소’의 듀오 유닛 ‘세훈&찬열’이 최근 발표한 ’10억뷰’도 디스코 리듬을 주무기로 한 힙합 곡이었다. 신인 그룹 ‘크래비티’의 ‘오 아’는 누-디스코와 일렉트로닉, 누-펑크 장르를 혼합했다. 트로트가수 주현미는 최근 디스코풍의 ‘돌아오지 마세요’를 발표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뉴트로((New)+레트로(Retro)), 중장년 세대에게는 향수로 작용하며 디스코는 이처럼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코로나19라는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힘겨운 삶에 조금이나마 경쾌한 스텝을 부여한다.

RM은 디스코 풍의 ‘다이너마이트’에 대해 “힘든 상황을 돌파해줄 ‘한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곡을 재충전 프로젝트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흥겨운 디스코 리듬에 찌르고 흔들다보며 ‘스테잉 얼라이브’, 즉 우리는 아직 삶아 있음을 느낀다. “아 아 아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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