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낡아빠진 술잔을 3억원 주고 샀다가 바보라고 놀림받았던 청년

지난 1906년, 서울 종로구의 대부호 전명기(全命基)의 차남이 태어났다.

그가 청년 시절에 물려받은 재산은 현재 기준으로 6천억원이 넘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믿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그 청년을, 모두가 부러워했다.

청년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일제의 편에 붙어 재산을 더 불리거나, 일생을 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러지 않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청년은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골동품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낡은 술잔 하나를 1천원(현재 기준 약 3억원)에 샀다. 당시 1천원이면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술잔을 1천원이나 주고 사다니. 진짜 바보 아니야?”. 사람들은 수군대고 비아냥거렸다. 그런데도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청년이 골동품을 사기 시작한 계기는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스승으로 인연을 맺었던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의 가르침이었다.

오세창 선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한다. 나라를 빼앗겨도 문화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라며 “문화의 힘이 강하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적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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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조선을 완전히 빼앗기 위해 지금 일제가 문화재를 약탈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청년은 그때부터 결심했다. 우리 문화재를 지키자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가진 돈으로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우리 문화가 깃들어 있는 물건이라고 하면 골동품이든, 가치가 전혀 없든 상관하지 않았다. 웃돈을 주고라도 사들이면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해외로 팔려나가는 문화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문화재를 보관, 전시해놓은 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葆華閣)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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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은 우리 문화재라면 전 재산을 쏟아부어 지킬 만큼 소중히 여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문화재가 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 청년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1만원을 주고 샀다. 원래 최초 판매가는 1천원이었는데, 청년이 “문화재의 가치에 비해 금액이 너무 적다”라고 말하면서 1만원을 값으로 치렀다고.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

청년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켰다. 6.25전쟁이 발발해 피난길에 오를 때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품에 간직했다.

간송미술관

영국인 존 개츠비와의 일화도 유명하다. 수십년간 일본에 거주하면서 도자기에 푹 빠진 존 개츠비는 국보급 문화재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존 개츠비가 갑자기 소장품을 처분한다고 하자, 청년은 곧바로 달려가 도자기를 사겠다고 말했다. 40만원을 지불하고 고려청자 20점을 사서 우리 품에 돌려놨다.

존 개츠비는 원래 50만원 이상의 값을 제시했으나, 이 청년의 문화재 사랑에 감동해 40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매입한 대표적인 문화재가 국보 제65호 ‘청자 기린형 향로’, 제270호 ‘청자 원형 연적’ 등이다.

연합뉴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전 재산과 목숨까지 걸며 우리 문화재를 지킨 청년. 그가 지킨 것은 단순히 문화재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이며 혼, 역사 그 자체다.

이 위대한 청년은 바로 간송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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